열 한 살.
유럽에 대한 나의 환상은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후에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된 <데굴데굴 세계여행>이라는 책을 통해서
유럽은 나에게 더욱 막연한 환상으로 커져갔다.
열 일곱 살.
공부와 입시에 대한 중압감이 내 삶의 전부이던 시절,
유럽은 내게 잊혀진 꿈이었다.
그리고, 스물 한 살.
우연히 들어가게 된 인터넷카페에서
나같은 대학생들이, 혹은 직장인들이,
방학과 휴가를 이용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직장을 그만 두면서까지,
돈을 모으고 적금을 깨서 유럽 여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땅이,
누군가에게는 흥분 가득한 현실이라는 사실이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 만난, 유럽에 대한 나의 꿈을 다시 깨워준 책이 바로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이다.
이 책은 부부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 선현경의 303일 간의 신혼여행을 담은 여행기이다.
1996년에 이루어진 그들의 여행은 1999년에 책으로 출판되었다가 얼마 후 절판되었는데,
7년 뒤인 2006년에 다시 복간되었다.
신혼집을 얻을 돈으로 1년 여의 유럽과 이집트, 캐나다 여행을 계획하고,
혼수용품으로 배낭을 사고, 신혼 가방이 아닌 배낭여행 짐을 싼 뒤
첫날 밤을 공항 바닥에서 보낸 부부의 기록인 만큼,
이 여행기는 여느 여행기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은, 여행기라면 당연히 들어가 있어야 하는
(때로는 글보다도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 사진이 단 한 컷도 들어가 있지 않다.
대신, 자신들의 전공을 한껏 살려, 모든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상상력 풍부한 캐릭터들의 섬세한 묘사가,
사진 한 장 없는 이 여행기를 그 어떤 책 보다도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여행기이니만큼 당연히 유명 관광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도 이 여행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여기에 담긴 그들의 소소하면서도 색다른 일상들이다.
파리에서 연꽃을 먹고,
이집트에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며 조개 껍질을 줍는 그들의 새로운 ‘일상’이
그 어떤 멋진 경관보다도 읽는 이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깊고 무거운 사색보다는
바로 앞에서 마주 앉아 듣는 수다 같고,
때로는 술술 써내려간 미니홈피의 일기처럼 다가오는 글이기에,
이들의 여행기는 여전히 내게 유럽을 꿈꾸게 하는 최고의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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